1984년 9월 1일 사적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청해진 유적은 당초 ‘장도청해진유적’이라는 명칭으로 지정되었으나 ‘청해진유적’(2002.02.18.)으로, 다시 ‘완도청해진 유적’(2011.07.25.)으로 지정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6년 6월 11일에 실시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현장조사를 거쳐 발굴조사계획 수립, 1989년과 1990년에는 법화사지를 먼저 발굴조사하고, 1991년과 1992년에는 장도 내 유적 분포 상황과 그 성격의 구명을 위한 시굴조사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복원사업이 이뤄졌다. 복원은 토성 745m, 탐방로 987m, 사당, 남문, 외문, 고대 등과 함께 토성 밖의 목책 시설이 복원되었다.
완도 청해진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모두 9차년도에 걸쳐 이뤄졌다. 1·2차년도는 법화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3~9차년도는 장도 청해진 유적에 대한 시굴(3·4차) 및 발굴조사(5~9차)였다.
그 결과 가장 특징적인 유구는 매납유구와 해안 원목렬 유구이다. 매납유구는 직경 1m, 깊이 70cm의 원형 구덩이에 토기 항아리와, 편병, 철제 솥, 철제 소반, 청동병, 철기 등을 인위적으로 매납한 것으로, 그 주변의 단(壇)의 성격의 건물지와 함께 제사유구로, 삼국사기 기록에 ‘청해진 조음도에서 중사를 거행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연구자료로 평가된다.
섬의 서남부 해안을 따라 일렬로 330m 가량 분포하고 있는 원목렬 유구 또한 섬에 위치한 장도 유적만의 독특한 유구이다. 깊이 80cm로 ‘U’자형 도랑을 길게 파고 그 안에 직경 40cm 내외의 원목을 일렬로 촘촘하게 세워 놓은 유구이다. 방어용 또는 접안시설로 추정되는 유구이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모두 9세기 초·중반경으로 밝혀져 청해진 당시의 흔적으로 확실시된다.
섬 내부의 성곽과 그 부속시설도 확인되었는데, 성곽의 총 연장은 890m이며, 섬 입구쪽으로는 내성을 둘러 출입구를 보강하였다. 기단석렬은 폭5~6m 간격으로 평행하게 배열한 후, 이 석렬을 기준으로 그 안쪽에 흙을 겹겹이 다져 올린 판축기법으로 축성한 것이다. 잔존 최고 높이는 2.5m, 성벽 최다 판축층은 18겹이다. 성 부속시설과 치 4개소, 고대 1개소, 문지1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이밖에 굴립주 건물지 2개소, 기단석축 건물지 3개소, 폐와무지 2개소, 배수로 시설 1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사면평병, 일면평병, 주름무늬병, 돌대문대로, 연질동이, 시루 등으로 모두 9세기 당시의 토기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특히 다량으로 출토된 중국 월주요 계통의 해무리굽청자편은 청해진 당시 해상 교역의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또한 다양한 문양의 기와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