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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작성일 : 2017-04-29 / 조회 : 58

[김성훈 칼럼]"투표는 덜 나쁜 사람 찍는 의로운 일"

 글쓴이 : 운영자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2017.04.27. 15:36:14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던 날 /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 진리를 외치는 형제 그립다!

밝은 태양 솟아오르는 우리 새 역사 / 삼천리 방방곡곡 농민의 깃발이요 / 찬란한 승리의 그 날이 오길 / 춤추며 싸우는 형제 그립다”

(작사 : 김성훈, 작곡 : 차곡(借曲))

 

춤추며 싸우는 형제 그립다 

 

이 노래는 원래 수원의 서울대 농대학생 동아리 모임이었던 ‘농사단(農士團)’의 단가였다. 1961년 농사단이 창립할 때 실제 10여 명의 학생회원들이 손가락의 피를 내어 술에 타 함께 나누어 마시며 어둡고 답답한 우리나라 농촌 농업 농민 살리기를 맹세하였었다. 그 모태 동아리이었던 더 크고 오래된 ‘한얼’ 모임원 상당수가 ‘농사단’의 주축을 이루었으므로, 이 농사단가는 캠퍼스에 널리 공유되었다. 그러다가 1975년 4월 11일 한얼회원 김상진(축산학과 4년)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그의 군부독재정치를 직접 규탄하며 할복한 사건을 계기로, 이 노래는 <농민가>라는 이름으로 순식간에 전국에 널리 퍼져 나갔다. 그리고 1970~80년 유신정권 시기와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정권의 학생 시위 때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황석영·김종률의 <산자여 따르라> 등과 함께 대학사회의 단골 운동가로 불렸다.

 

천성이 소심하고 나약해 겁이 많은 필자는 대학 졸업 후 해외 유학 기간을 제외하곤, 줄곧 대학에 재직하며 혹시나 <농민가>의 작사자가 필자인지 밝혀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민주 정부의 농림장관을 거쳐 원주의 상지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2005년 8월 강원도 화천 산골에서 지체부자유자 교인들과 함께 콩 농사를 지어 메주 장 담기로 성직자 생활을 지탱해오던 자칭 ‘돌팔이 목사’ 임낙경 씨가 <촌놈 林洛京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의 출판기념잔치를 열었다. 당시 참여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고(故) 김근태 씨와 함께 주빈으로 초청받아 받은 책에 <농민가>가 수록되어 있었다. 가사가 일부 다르기는 했으나, 그보다 ‘작자 미상, 작곡 미상’이라는 설명이 마음에 걸렸다. 마침 그 자리에는 옛 농사단 단원이었던 정진석 동문이 동석해 있어, 상의 끝에 용기를 냈다. 축사를 하는 도중에 이 노래의 원 작사가가 필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로써 이러쿵저러쿵 안개 속에 설왕설래해오던 <농민가> 작사가의 정체가 44년 만에 세상에 당당히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눈물의 씨앗 :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 

 

박정희 군사쿠데타 정권의 등장은 우리 역사에 대기업 재벌 성장과 사회 불평등 격화를 동시에 배태(胚胎)하였다. 독재 철권정치는 그 기본 수단이었다. 4.19학생혁명 이후 민주 절차에 의해 선출된 장면 정부 치하 민주화 바람이 전 분야에 걸쳐 한창 꽃을 피우려던 시기, 박정희 등 일단의 정치군인들이 총칼과 탱크를 몰고 꼭두새벽에 한강을 건너와 채 1년도 안 된 민주정부를 쓰러뜨리고 정권을 틀어쥐었다. 그것이 5.16군사정변이다. 말로는 조국 근대화 어쩌고저쩌고했지만, 그건 정권욕에 사로잡힌 무리들의 쿠데타 핑계였다.

 

박정희 정부는 현대사에 있어 ‘수출주도의 공업성장’이라는 그럴듯한 구호 하에, 최초로 삼성 등 재벌기업 육성과 유착한 정권이 됐다. ‘3白산업(밀가루, 목면, 설탕)’ 특혜와 외자·외곡 도입 시의 국내 환율 차액(공정환율과 시장 암거래 환율 차이가 약 3~5배) 특혜, 공장 및 산업단지의 무분별한 과잉 허용에 따른 토지투기 및 지가 차액 합법화 등 불법적인 특혜주기 방법으로 재벌들의 원초적인 자본축적을 도왔다. 반대급부로 재벌의 부당이득 일부를 군인들이 삥땅을 쳐 정치 자금화하거나, 또는 사익화하였다. 재벌기업을 위한 저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당하게 농산물 가격을 낮추기 위해 미국 잉여농산물의 과잉도입을 일삼았고 밀, 콩, 옥수수, 면화 등의 도입 홍수로 국내 가격은 폭락했다.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토종 밀, 콩, 옥수수, 면화 농업은 그 재임 기간 18년간 이 땅에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농촌경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으리만치 피폐되어 갑돌이와 갑순이 등 젊은층의 이농 행렬이 줄을 이었다. 청년들은 도회지의 막노동꾼이나 또는 범법자로 전락하고, 여성들은 ‘엘레나’ 등 생소한 이름으로 바뀌어 유흥가에 몸을 팔아 연명하거나 봉제공장의 삯바느질 꾼 등 산업역군이 되었다. 급속한 향도(向都) 이농의 엑소더스(exodus, 대탈출)로 도시 부문은 외형적으로 화려하게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농업·농촌 부문은 급격히 쇠퇴일로로 접어들어 황폐화되었다. 조국의 산하는 난개발 투기의 장으로 변신하였고, 그 와중에 아름다운 국토환경과 야생 생태계는 처참히 짓밟혔다. 그 무렵 탄생하여 유일하게 널리 불린 것이 <농민가>이었다. 

 

도농 격차가 심화되는 한편, 산업화마저 경부선(서울-대구-부산)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지역 간 발전 및 소득 격차 현상이 노골화되었다. 정권주도 세력들이 많이 가진 자와 유착됨으로 인해 사회 양극화 현상이 극명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렇듯 농업 농촌을 다 망쳐놓고 새마을운동이나 창조농업이니, 6차산업(1차 농수산업,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업이 복합된 산업)이니, 정권 차원의 온갖 푸닥거리를 해보았자 ‘잘 살아보세’는 관료와 재벌, 정치가, 떡고물 기레기와 청부 교수 학자들만 ‘잘 살아보세’로 전락하여 버렸다. 정작 생명농업과 환경생태계 그리고 공동체의 주체인 사람(농민)이 배제된 농정에서 허황한 그들만의 잔치요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역 간, 격차와 도농 간, 빈부계층 간 격차 및 불평등 그리고 사회 양극화는 박정희 일당의 정치군인과 정권이 애초부터 뿌려 놓은 ‘눈물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진정한 민주 정부가 들어설 무렵엔 그 불평등의 씨앗이 성장하여 극심한 사회 양극화를 불러들이고, IMF 환란 위기도 불러왔고, ‘이명박근혜’ 정부 치하에서는 광우병 의심 쇠고기마저 들어올 뻔 했고, 가습기 살균제와 메르스 및 세월호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마침내 고용 불임의 경제성장과 고용 불임의 수출진흥으로 미증유의 고용 절벽 현상에 더하여 절망적인 출산 절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회 양극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시기 젊은 학생들이 자연과 문명, 경제 개발과 환경생태계 보전 등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 발전과 골고루 잘사는 공동체 그리고 양적 질적으로 지속가능한 식량과 농업의 발전을 기반으로 하는 남북한 간의 화해와 협력까지 함께 꿈꾸고 노래하는 것은 너무나도 마땅하고 옳다고 말할 수 있다. 

 

 

 선각자(先覺者), 선구자(先驅者)의 길 

 

세계에서 ‘국민 행복지수(GHN)’가 제일 높은 나라로 히말라야 산록 1인당 국민소득 2800달러의 부탄왕국을 꼽는데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계적으로 ‘내노라’ 하는 국제기관과 연구소 정치가 학자들의 평가가 한결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재단의 박진도 충남대 교수가 두세 차례 방문하여 부탄의 ‘행복의 비밀’을 탐구하였다. 결론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면 충분하다’는 것이다.(<부탄 행복의 비밀>, 한울아카데미 펴냄) 김경희 작가의 <마음을 늦추고 부탄을 걷다>(공명 펴냄)를 읽어 보면, 부탄 사람들이 매일 드리는 기도가 자기 가족이나 자식 그리고 재물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자연이 그대로 있기를 원하는 기도라는 사실’에서 뭔가 깨닫는 바가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P)이 2만4000달러라고, 지금 국민들이 행복해하고 있는가. 선진국 모임인 OECD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와 터키보다 더 낮은 끝에서 세 번째 국가이다.

 

바야흐로 지금 우리나라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열네다섯 명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모두 다 한결같이 GNP 상승과 수출증대로 대표되는 경제성장론에 열을 올리고, 대기업의 이윤 확대를 인간의 존엄성 위에 두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하여 흰 거품을 내고 있다. 그래서 국민이 행복해질 것인가? 박정희 정권이 뿌리내린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현상은 해소될 것인가. ‘이명박근혜’가 다져 놓은 기득권 세력들의 승자독식 경제 현상은 사라질 것인가. 식량자급률이 23%밖에 되지 않은 세계 최하위권인 이 나라 이 겨레의 식량주권이 살아날 것인가. 국민들의 먹을거리 7~8할 대부분이 유전자조작식품(GMO)과 발암성 제초제 글리포세이트로 뒤덮여 과연 국민들의 건강은 안녕할 것인가.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하는 대선후보들이 아니던가. 오로지 1% 특권층과 홍보성 국민 경제 지표만으로 가성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허황한 셀프 구호에 스스로 만족하는 대선 후보들의 한심한 국가관과 생명 환경 농업 식품안전문제에 대한 무감각성을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이래 정치경제 지배 세력은 엄청난 서사시적 규모의 소농·가족농의 몰락과 다양한 환경생태계의 파괴, 생명의 원천인 산림과 야생 생태계의 피폐화에 크게 책임이 있다. 토종의 몰락과 외래종의 범람으로 아름다운 생태환경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식량주권, 농민주권 쇠퇴할 대로 쇠퇴하여 국민의 민생 민주 민권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한 FTA, WTO 등 각종 국제협약의 체결로 우리 사회 고유의 평화 평등 형제애 협동 등 민주적 전통마저 말살하고 한 줌 남은 소농 가족농의 말살까지 은밀히 도모하고 있다. 똑같은 아니 가속도의 살림터 훼손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나라 최고 통치권자가 이렇다 할 세상을 구제할 철학과 비전이 저열하거나 영혼이 없는 기계 같은 관료들이 온존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엔 미래가 없다. GNP, 성장, 수출, 공업화, 4차 산업혁명 등 기존의 가치체제 하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를 뽑을 것인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 이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와 우리 가족의 미래가 되고 있다. 시대정신을 꿰뚫어 내다보는 선각자, 선구자는 과거의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고, 지금 이곳의 우리이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이런 후보가 싫다 

 

나의 막역한 오랜 친구 김 아무개 교수가 메일을 보내왔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 중에 마음에 든 사람이 하나도 없어 투표하지 않겠노라고. 그래 내가 답했다. “민주주의 나라의 국민의 최대 권리요 의무를 포기하겠다면 차라리 나라를 떠나라!” 그래도 친구 사이인데, 막말을 할 수 없어 젊었을 적 우리나라 지성사(知性史)에 가장 큰 스승이었던 고(故) 함석헌 선생님을 말을 인용하였다. 함 선생은 대학 은사이신 성천 류달영 선생님의 소개로 유학 중인 나의 초라한 자취 공간에 이틀간 유숙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의 말씀이 내 인생에서 수십 번 치른 선거 때마다 나의 투표 기준이 되었다. 함석헌 선생은 “선거, 즉 투표란 좋은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아니라,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해 찍는 의로운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 중 농민대표 한 명(김선동 전 의원)을 빼놓고는 유력 후보들이 대개 다섯 개 정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의 대표로 압축되는데, 그들의 농정 공약이라는 것이 버선을 신은 채 가려운 발바닥 긁기 식으로 진정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농정의 주체인 사람, 즉 농민을 어떻게 부축해 세울 것이며 경제 개발(대기업 이익)과 식량주권, 안전한 먹을거리 환경생태계 보전을 어떻게 경제 발전과 조화롭게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명료한 철학과 처방이 모두 낙제 수준이다. 

 

그럼, 누가 가장 나쁜 사람인가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적어도 남의 불행과 고통을 측은하게 여기고 동참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거나 결핍한 후보, 자기 언행에 대한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는 사람, 환경생태계와 대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개발론자는 지도자감으로 영 ‘아니’된다. 양심과 수치심이 없고, 노동자 농민 서민 등 풀뿌리 민초들에 대한 동정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올시다’이다. 그리고, 세월호 피해자와 같은 불의의 희생자들을 돕기는커녕 헐뜯는 후보, 북한 핵의 수도권 방어에 거의 무용한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졸속적인 사드 배치행위에 대하여 이랬다저랬다 말을 바꾸는 사람, 상황이 달라진 과거사를 들춰내 상대방을 흠집 내려는 사람, 자기주장이나 정책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남의 정책이나 주장만을 헐뜯는 사람, 맹목적으로 지지자를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꼴통 보수이건, 극단적인 우익이건 종북 좌파이건 손짓하거나 욕하고 폄하하는 후보들은 싫다. 아니 역겹다. 이것도 저것도 모르겠거든, 차라리 농민 주권자들은 차라리 농민 후보를 찍으면 어떨지 모르겠다. 

이러한 기준으로 필자와 우리 가족은 아주 나쁜 후보, 그냥 나쁜 후보, 덜 나쁜 후보를 선별하여 투표를 해왔다. 지하에 계신 함석헌 선생께서 빙그레 웃으실 투표이었기를 그때마다 내심 걱정하고 바랬다. 

(이 글은 전국농민회가 발행하는 <한국농정신문> 5월 1일 자 ‘농사직썰’란에 게제될 예정입니다. 필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