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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작성일 : 2017-05-30 / 조회 : 139

[광주일보] [신 호남지] 도전정신과 정의로 빚어낸 역사 ①21세기에 장보고를 알아야 하는 이유

 글쓴이 : 운영자

도전·개척정신으로 … 장보고 글로벌 시대 내다본 혜안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9세기에 활약했던 장보고 청해진 대사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일각에서는 전파전자기술과 인공위성의 발달로 ‘무인 항해’가 가능한 선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세상에 무동력 선박으로 한중일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던 장보고로부터 새삼 배워야 할 게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체제 하에서 양자·다자·복합 FTA가 체결돼 지구촌경제공동체가 형성되는 등 천지개벽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새삼 장보고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시대 상황과 장보고가 활동했던 시대와는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굳이 장보고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보고의 후예인 기업가들조차도 그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글로벌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도 장보고의 글로벌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무슨 뚱딴지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는 ‘국제화’의 개념이 태동되기 훨씬 이전에 ‘바다를 경영한 최초의 세계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글로벌화를 먼저 경험했던 그의 삶을 반추하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계화가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에 대해서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앞서 경험했던 선인(先人)의 발자취를 분석하고 글로벌 마인드를 터득할 수 있다면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보고 대사한테 배워야할 내용은 무엇일까?

첫째, 그는 젊어서 당나라에 건너가 1000명의 병사를 거느리는 군중소장에 승진하는 등 ‘위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요인은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그가 복잡한 정치·경제적 상황에 함몰돼 좌절하지 않고 과감하게 ‘헬 신라’(Hell 新羅)했던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 및 개척정신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둘째, 장보고의 글로벌 마인드를 배울 필요가 있다. 우선 ‘그의 이름’에서 글로벌 마인드를 확인할 수 있다. 한·중·일에서 그의 이름은 각각 다르게 불렀다. 

신라에서는 성(姓)이 없이 궁파(弓巴) 또는 궁복(弓福)으로 통했다. 신라 관습상 평민은 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지만 성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이두로 표기하면 弓福에서 ‘弓’의 한자 뜻을 따면 ‘활’이고 ‘福’의 음을 따면 사람을 가리키는 ‘보’이니, ‘활보’라는 의미이다. 즉,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張保皐’로 표기됐다. 이 이름의 해석은 ‘백의의 동이 민족을 보호하는 의미’에서 보호할 보(保)와 언덕 고(皐)를 이름으로 썼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에는 ‘張寶高’로 한자를 다르게 표기했다. 

재물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성향에서 보물 寶와 높을 高자를 섰던 것이다. 오늘날도 국제 비즈니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고유 이름과 현지에서 활동하기 편한 이름 등을 갖고 있는 경우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장보고가 위대한 성공스토리를 남겼던 점을 배우자. 그의 생애는 한·중·일 등 삼국의 正史에 기록됐다. 이는 그의 성공스토리가 글로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역사서인 ‘신당서’ 제220권 동이전과 신라전에 ‘장보고의 스토리’가 수록됐는데, 이 사서를 편찬한 송기(宋祁)가 왜 외국인을 게재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송기는 “아마 원망과 독해로써 서로 끼치지 않고 나라의 우한을 먼저 생각한 것은 진(晉)에 지해(祗奚)가 있고 당에 곽분양(郭汾陽)과 장보고가 있는데 어찌 동이(東夷)에 인재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그는 ‘나라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국어(國語)의 잠언을 인용하면서 장보고가 안록산의 난을 평정했던 당의 영웅 곽분양(郭汾陽)과 비견된다고 극찬했던 것이다. 이는 장보고를 우국지사의 모델로 내세움으로써 자국민에게 역사적인 교훈을 심어주려는 의도에서 편찬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사서인 ‘일본후기’(日本後記)》, ‘속일본기’(續日本記), ‘속일본후기’(續日本後記)》등에도 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일본후기에는 일본 정부가 장보고 선단과 독자적인 무역관계를 설정하고 신라와 당으로부터 선진문화와 물품의 공급을 장보고에게 의존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조공무역이 대세를 이루던 국제교역 패러다임을 민간무역으로 바꿨던 장보고의 업적을 높이 샀기 때문에 자국의 정사에 그의 스토리를 적었던 것이다. 

넷째, 당과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신라인 디아스포라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세계경영을 주도했던 장보고의 경영모델을 배울 필요가 있다. 장보고는 신라의 첨단산업인 해상운송기술을 활용하여 다당의 연안무역을 장악한 재당 신라인과 일본경제권을 독점했던 재일 신라인을 하나로 묶었기 때문에 한중일 해상무역을 주도할 수 있었다.

이 모델을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ICT를 활용해 180개국에 흩어져 있는 720만명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하나로 묶어 한국경제의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다. 

다섯째, 돈을 버는 기술보다 고기를 잡는 장보고의 경영모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그는 중국 월주요에서 생산된 햇무리굽 도자기를 신라와 일본에 유통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도자기 제조기술을 습득, 강진과 해남에 도자기 클러스터를 조성했던 것이다. 

이러한 선각자의 혜안 때문에 고려시대에 강진에서 제작된 상감청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로 부각됐던 것이다. 이처럼 장보고의 성공스토리와 글로벌 경영 비결은 어두컴컴한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경제우위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더불어 살고 번영을 향유하려면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에 ‘글로벌’(Global)을 실천했던 장보고 대사를 멘토(Mentor)로 삼자는 것이다. 불세출의 위인이었던 그의 기업가정신과 글로벌 경영을 계승 발전시켜서 오늘날 기업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해주거나 고민 또는 해법을 풀어주는 위대한 스승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구루’(guru)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황상석 (사)장보고글로벌재단 사무총장

-정치학 박사

-선문대학교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연구위원